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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QUEL-01 · 2026-W29

'딸깍'이라는 환상

적정AI 입문서 · 저자 프리퀄 — 2026-07-12


나는 IT를 전공하고 삼성SDS에 입사했다. 다양한 개발 프로젝트를 참여했다. 업무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요구사항을 분석하고 시스템을 설계한 후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SW엔지니어가 참여해서 오랜 기간 동안 밤을 새면서 일했다. 하지만 요즘은 AI가 기획부터 설계, 코딩, 테스트까지 수행한다.

예전에 밤을 새워 개발하던 시절에 농담처럼 했던 말이 있다. "나 대신 코딩해주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 라고 넋두리를 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농담이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일부 유튜버들이 말하듯이 정말 '딸깍'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알고 있는 만큼 할 수 있다.

'딸깍'의 실제

유튜브에서 흔히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한 줄 프롬프트를 넣자마자 몇 분 만에 앱 한 개가 완성된다. 화면에는 5분 만에, 코딩 몰라도, 딸깍이면 끝 같은 자막이 붙는다.

그 영상 속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조금 다르다. 그 사람은 요구사항을 이미 머릿속에서 한 번 정리한 상태다. 어떤 화면이 필요한지, 데이터가 어떻게 흘러야 하는지, 로그인이 있어야 하는지 없어야 하는지를 이미 안다. 그리고 AI가 만들어낸 결과가 이상하게 나왔을 때 어디가 잘못됐는지를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다음 프롬프트를 어떻게 다시 던져야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지도 안다.

즉, 그 사람의 '딸깍' 뒤에는 20년치 개발 감각이 서 있다. 화면에는 20년이 잘려 나가고 5분만 남는다.

이걸 모르는 사람이 같은 프롬프트를 그대로 따라 넣으면 어떻게 될까. 대체로 세 가지 자리에서 막힌다. 첫째,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둘째, AI가 이상한 결과를 내놓았을 때 뭐가 이상한지를 알아채지 못한다. 셋째, 다음 한 걸음을 어디로 옮겨야 하는지 모른다.

'딸깍'은 잘 편집된 결과 화면일 뿐이다. 그 뒤에는 편집실에서 잘려나간 판단·경험·감각의 시간이 있다.

AI는 지식을 대체하지 않는다, 증폭한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AI가 있으니 지식은 이제 필요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30년 가까이 IT 업계에서 배운 것 하나를 정리하면 이렇다. 좋은 도구는 지식을 대체하지 않는다. 지식을 증폭한다.

컴파일러가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통합 개발환경(IDE)이 나왔을 때도, StackOverflow가 나왔을 때도, GitHub Copilot이 나왔을 때도 그랬다. 도구가 강해질수록 아는 사람의 생산성은 열 배·백 배로 오른다. 반대로 모르는 사람의 자리는 도구가 커진 만큼 오히려 좁아진다. 도구가 스스로 뭔가를 해주는 것처럼 보이니,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에 갇힌다.

AI는 이 격차를 훨씬 크게 벌린다. 왜냐하면 AI는 결과물의 완성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만들어진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감춰준다.

그리고 이것이 요즘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자리다. 결과는 그럴듯한데, 그 결과가 맞는지 틀렸는지 판단할 자기 기준이 없는 사람이 계속 늘어난다. 코드는 돌아가는데 그 코드가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는 모른다. 문서는 완성됐는데 그 문서가 우리 조직 맥락에 맞는지는 모른다. 초안은 나왔는데 이 초안을 어디까지 고쳐야 할지 감이 없다.

'알고 있는 만큼'의 정체

첫 문단에서 알고 있는 만큼 할 수 있다고 썼다. 이 말의 정확한 뜻을 조금 더 풀어보고 싶다.

여기서 알고 있는은 세 겹이다.

첫째,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가. 요구사항을 자기 언어로 정리할 수 있는가. 이건 프롬프트를 잘 쓰는 능력이 아니다. 자기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능력이다. 이 부분이 흐릿하면 AI는 우리 대신 흐릿한 결과를 뱉는다.

둘째, 결과가 맞는지 판단할 기준이 있는가. AI의 답을 그럴듯한지가 아니라 맞는지로 볼 수 있는가. 이 기준은 책 한 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분야에서 오래 부딪혀본 시간 위에서만 자란다.

셋째, 다음 걸음을 알고 있는가. 지금 이 결과에서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남길지, 어디로 데이터를 흘려보낼지, 이 결정이 몇 달 뒤에 어떤 문제로 돌아올지. 이건 진짜 경험의 자리다.

이 세 겹의 앎이 있는 사람에게 AI는 진짜 증폭기가 된다. 이 세 겹이 흐릿한 사람에게 AI는 환상 제조기가 된다. 결과는 나오는데 방향이 없는 상태. 만들어지는데 남지 않는 상태.

30년치 개발 경험이 오늘 가르쳐준 것

지난 30여 년간 나는 도구가 여러 번 세대교체되는 것을 봤다. 처음에는 종이 위에 순서도를 그려가며 프로그래밍했다. 다음에는 툴이 도와줬고, 그다음에는 프레임워크가 도와줬다. 이제는 AI가 도와준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새 도구가 나오면 기존 지식은 쓸모없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몇 년 지나면 그 말이 틀렸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새 도구를 제대로 다룬 사람은 언제나 기존 지식이 튼튼한 사람이었다.

AI 시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번엔 그 차이가 이전 어느 세대교체보다 더 벌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AI는 지식이 없어도 결과가 나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식을 쌓는 사람결과에 만족하는 사람 사이의 간격이 훨씬 조용히, 훨씬 크게 벌어진다.

그 간격이 몇 년 뒤 우리 삶에서 어떻게 드러날지 — 나는 이 자리에서 조금 걱정이 된다.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이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로 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며

이 시리즈는 AI 사용법을 알려주는 자리가 아니다. AI 시대에 우리 각자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를 다시 묻는 자리다.

'딸깍'의 환상 뒤에 서 있는 진짜 자리 — 우리의 전문성 자리를 함께 되짚어보고 싶다. 아홉 개의 질문과 두 개의 실용 도구로 그 자리를 함께 돌아본다.

다음 챕터에서는 프롤로그로 들어간다. AI를 배우기 전에, 당신의 전문성을 먼저 점검하십시오. 이 시리즈 전체의 첫 질문이 거기서 시작된다.


'딸깍'은 잘 편집된 화면이다. 그 뒤에는 편집실에서 잘려나간 지식·판단·감각의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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